ARTIST
CRITICS
방을 위한 엘레지
조윤국 작가론
2023
조재연 미술 평론가
1. 녹슨 의자와 곰팡이 핀 책, 삭아가는 헝겊, 지글거리는 형광등. 방부제 하나 삼키지 못해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락방은, 그러므로 몰락이 아니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일 때, 이곳은 오직 교체되거나 세척되지 못하고 그저 뒤도 앞도 썩어갈 사물만을 모두어 성벽을 짓는다. 현명한 자들이 만든 세상이 얼룩과 때를 죄악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따르지 않는 패배로서 이룩할 의미를 유년은 알고 있었다. 명하노니, 가지지도 바뀌지도 않을 사물만 있는 까닭으로 밖을 횡행하는 소유와 교환의 논리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아이는 이 성곽을 말미암아 성숙을 미루어 부모의 훈육과 제국의 질서, 상식의 논리를 방어했다. 때로는 차가 끊겨 함께 들어온 단칸방이 그랬고, 지하의 동아리방도 작업실도, 어느 날은 차 대신 사람이 행진하는 광장이 그랬다. 조윤국이 지은 건조물의 벽과 벽 사이를 서성이다가, 나는 어제에 남기고 온 유령幼齡을 도리 없이 만난다. 스러지고 이우는 것들로 잠시 환해지는 도시의 모서리. 그의 작업이 장소로 부르는 것들이다.
토머스 모어가 구상한 '유토피아(utopia)'에는 두 가지 역설이 있다. 먼저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아니다(ou)'와 '장소(topos)'의 합성어로 현실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유토피아는 낙원이라면 전제되어야 할 인간의 자유나 자율이 주어지지 않는다. 외려 그곳에서 작동하는 것은 국민 개조를 강제하는 통제 원리다. 유토피아는 초월적으로만 존재하고 혹여 임재하더라도 전체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개념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다른(heteros)'과 장소의 합성어인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달리 일상의 공간과 시간에 접혀 들어와 있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아이가 거실에 세운 캠핑 텐트이기도 하고, 테라스의 화분 상자, 옥상의 텃밭, 나아가 클럽이나 거리 공연은 물론 온갖 종류의 시위를 포함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당 장소 외부의 상태와 질서,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며, 저항의 공간을 만든다는 점이다. 조윤국의 작업은 순서대로 방, 모뉴먼트, 섬 그리고 도시를 향해 영토를 확장해 왔다. 이들 장소는 외부를 거스르는 세계의 구멍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틈으로 드러난 헤테로토피아다.
2. 장소는 스스로가 줄곧 안주하려던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것 같다. 소유의 구획을 나누는 벽과 천정은 무너져 있고, 지식를 담았던 책은 쏟아져 내리며, 유목과 수렵을 금지하고 오직 같은 자리에 인간을 고정했던 책걸상은 뒹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머무는 이는 갖가지 난파된 잔해를 쌓아 올릴 뿐, 그의 발 앞에 내던져진 대참사의 파국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구획 없이 가장 넓은 장소를 처음으로 가진다. 서적을 올릴 테이블을 지니지 못한 거주자는 이제 장판과 계단으로 변해버린 책에 대해 밟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어, 어제의 지식을 배우기보다 내일의 지식을 홀로 만들어야 한다. 조윤국이 품은 헤테로토피아는 〈작가의 방〉(2011~20)이라 명명한 이 풍경에서 시작했다. 사물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됐지만 동시에 그들이 갖게 된 것은 소유와 지식, 정주定住라는 외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잊혀진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 꿈꾸던 이야기”다. 꿈이 죽은 도시에서 사는 일은 괴롭다. 누군가 살해된 방에서 사는 일처럼. 그를 가둔 벽이 없으니 장소는 이제 외부를 향한다.
폐허가 존재한다는 사실 혹은 모든 것이 폐허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은, 지금의 세계가 영원할 것이란 믿음에 균열을 낸다. 기념비는 사라진 것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사실 그들이 종사하는 것은 ‘영원’이라는 개념이다. 기념비는 지난 존재들이 여전히 복기되고, 재현될 수 있다는 위로로서 금이 간 영원을 복구하기 위해서 세워진다. 그러니 오늘을 거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반反기념비, 즉 모든 것의 쇠퇴를 주선하는 기념비다. 〈현대적 기념비〉(2012~19)에서 조윤국이 거둔 것은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판단되는 것들”로 “가차 없이 삭제되기를” 면치 못하는 재개발 지역의 풍경이었다. 하나의 건물을 기억할 때 그곳에 담긴 얼룩과 불규칙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 치밀한 논리에 따른 설계, 관리에서 그들은 예외이거나 이내 삭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을 맞이하는 새 도시의 이주민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그 얼룩과 불규칙뿐이다. 견고한 도시의 번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영원히 사라짐을 추방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이 때문에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 증빙된다.
〈작가의 방〉, 〈현대적 기념비〉가 작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장소를 실체로서 형상화한 것이라면, 반대로 〈상실의 섬〉(2016~21)은 장소를 추상화한 공간에 가깝다. 이제 그들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모든 외부의 잔여물을 벗어던진다. 도식화된 사각형에서 원으로 또 비정형으로, 길과 길 사이의 분열에서 연대로, 오직 수직으로 지면에 접착되어 있기를 강요받았던 신체에서 수평과 공중으로 폐허는 나아간다. 기존 작품이 지닌 도식과 분열, 수직의 규격은 적어도 장소를 그런 식으로 현상할 수밖에 없는 외부를 상상하게 만든다.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건물은 사각이어야 하고, 도로가 있기에 벽은 반듯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날 수 없으므로 모든 출입구는 지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실의 섬〉에서 폐허는 외부에 의지하지 않는 스스로 오롯이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로 나아간다. 대륙과 섬, 행성으로 존재하는 폐허는 더 이상 장소가 아니라 세계로 존재한다. 이로써 조윤국이 방, 기념비, 섬을 지나 ‘토피아(topia)’라는 이름으로 향했던 까닭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여기도 아닌 장소. 그러나 초월적이지도 억압적이지도 않으며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오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으로서 외려 폐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는 철거와 건축의 공사 현장이 구분되지 않는 것과 같다. 역동적인 운동의 동작은 곧 그것이 멈출 정지의 상태를 상상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정지의 상태는 멈춤을 말미암아 응축된 힘이 발산될 가능성을 예상하도록 만든다. 조윤국이 생동하는 세계가 아니라 죽은 세계에서 다음을 기약하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폐허가 진실로 새로운 세계를 창설하기 위해선 폐허는 지금 지니고 있는 힘을 모두 소진해야 한다. 따라서 〈서브토피아〉(2020~23)의 모노톤은 표백과 획일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밀려 들어올 색과 개성을 환대하는 소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상실의 섬〉에서 기대했던 자유는 여기서 모두 응축되어 무의미한 것으로 환원된다. 이 무의미 앞에서 어떤 곳도 중심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위계도 가능하지 않다. 장소와 자아가 어떤 경계도 속성도 부여받지 못한 세계에서 가능한 것은 벽으로 감춰진 무한한 미로의 무한한 탐색이다. 인식 가능한 모든 것을 상실한 우주를 창조했다는 사실. 이제 남은 것은 해방뿐이다.
가장 나중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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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방을 위한 엘레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pp.92~95.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Robert Smithson, “Entropy and the New Monuments”, Artforum, 1966.
살아가는 공간의 재해석
조윤국의 ‘상실’ 작업에 관한 몇 가지 인상
2016
변종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장
1.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외형적 닮음이 아닌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요소, 즉 작가의 생각, 성격, 특성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접한 작가 조윤국은 꼼꼼하고 세심하다. 또한, 차분하고 솔직하다. 꼼꼼하고 차분한 그의 성격은 지난한 과정의 육체적 노동이 집약된 그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3년 이후 꾸준하게 한 가지 제작방식을 고집해온 그의 작품은 한결 정교해졌다. 과거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작품제작의 밀도가 높아지고 기술적 노하우가 쌓였다. 2014년~2015년 사이의 작품에서 노출된 보존의 취약성을 보강하여 견고성과 보존성을 높이고, 표현의 단조로움은 채색과 리터치의 반복으로 다양성과 무게감을 더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유사한 내용과 형식의 반복으로 밀도와 기술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숙련의 쌓임은 작품의 제작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외형의 견고성만큼 내용의 깊이도 동반 발전했는가다.
조윤국의 입체작품은 기본적으로 작가 개인의 취향(신발, 생활용품)과 향수(아버지의 서재)에 근거한다. 여기에 뉴욕 체류 등 새로운 공간에서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삶의 근본에 관심이 깊어지고 그에 따른 작가 의지와 생각에도 변화가 있다. 그의 미니어처 작업은 작은 공간에서 큰 작업을 할 수 없던 시절, 드로잉적 성격으로 만들게 된 ‘신발시리즈’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주변의 개인 생활용품으로 재현의 대상이 확장되면서 골판지 작업이 하나의 표현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대상을 골판지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객체에서 공간으로 시선을 옮긴 ‘서재시리즈’에서 하나의 공간이 아닌 수십 채의 집을 집적시킨 ‘기둥식 건물시리즈’로 변화를 이어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십 채의 집이 마치 지도(섬)처럼 펼쳐진 거대 형식으로 확장했다. 결국, 나이키 신발이라는 한 가지 브랜드에서 ‘개인 공간-건물-지역과 장소’로 확장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특히 입체에서 부조식 평면으로 변형을 꾀한 것은 그동안의 작업이 하나의 펼친 면으로 집약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 개인의 취향과 사적 공간에 집중했던 시선을 외부로 옮기면서 거주의 문제, 상실의 시대라는 현대사회의 보편적 문제로 전이한 주제 의식이 긍정적이다.
2. 집은 인간의 안락함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지만, 불변의 대상은 아니다. “모든 집은 위협받고 있다”라고 했던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현대사회에서 집은 빠르게 변화·발전하며 과거의 존재감을 잃어간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바람 속에 과거 건물이 강제 철거되고, 세월을 견뎌온 집들은 낡아서 사라진다. 결국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자의든 타의든 그 존재성을 장담할 수 없다. 주인이 물건을 버리거나 팔고, 집주인이 집을 떠나는 순간 그동안의 존재가치와는 전혀 다른 대상으로 남는다. 조윤국이 애장품(나이키)을 판 후의 감정, 동네 집들이 철거되는 광경에서 느낀 감정 등 스스로 어떤 대상의 존재성이 사라진(파괴된) 후 남겨진 상실의 감정을 집적시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서재시리즈가 지닌 내밀함은 작가 개인의 집착이 만들어낸 공간을 들여다보는 호기심보다 지식의 보고가 폐허처럼 잔존해있는 모습에서 느끼는 허무, 불안, 상실에 있다. <서재>(2012), <책을 파는 거리>(2013), <오래된 방>(2014) 등 2012년부터 꾸준하게 제작하던 서재시리즈가 한동안 제작되지 않다가 2016년 재등장했는데 외형적 틀거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 속 공간은 더 깊어지고 이곳저곳 흩어진 물건들은 미처 끝맺지 못한 이야기처럼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다. 마치 작가의 고뇌와 방황의 흔적들을 보는 듯하다. 서재에 널린 다양한 사물은 잊혀진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 꿈꾸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마주하던 불안감과 욕망까지.
서재시리즈가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지식의 욕구처럼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작업에 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것들, 지켜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작품에서 묻어난다. 무엇보다 2013~2014년 가로형의 서재가 2016년 작품에서는 공간의 표현과 해석이 깊어진 부분이 인상적이다. 공간의 표현에 그만큼 의미부여가 명확해지고, 동시에 조형적 완결미에 집중한 결과로 보인다.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지극히 개인의 편린적 경험에 기반을 둔 작업이지만, 철저한 계산보다는 직관으로 감지되는 남다른 공간인지 감각능력이 발휘된 결과들이다.
현시점에서 조윤국의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앞서 언급한 ‘부조식 평면시리즈’이다. ‘섬’ 형식의 이 작품은 작가가 2015년 미국 뉴욕 맨해튼 근처(퀸스)의 낡은 건물에 잠시 머물렀던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의 입체 작품 중 구성이나 시각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 사실 전작의 기둥시리즈는 장난감을 조립하는 과정처럼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의 쌓기나 막연한 채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에 견주어 부조식 평면 시리즈는 위로 쌓아가던 건물 덩어리를 옆으로 쌓는 구성력부터가 새롭다. 건물이 옆으로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쌓일 수 있다는 조형적 즐거움에 사고의 유연성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특히 건물들이 빼곡히 붙어있는 맨해튼의 공간(건물)구성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하여 그동안 작품에서 보였던 한계를 전환하기 위한 조형방식이라는 인상이 깊다.
‘서재 시리즈’와 ‘기둥식 시리즈’가 경험에 근거한 실체적(구체적) 대상을 입체화한 것이라면, ‘부조 시리즈’는 추상적 공간에 더 가깝다. 전자의 작품들이 일정한 상자크기, 입체의 높이, 표현형식 등이 얼마간의 범위 내로 고정되었다면, 후자는 고정된 틀 없이 면적과 부조의 높낮이, 작품의 면적 등에서 앞선 시리즈보다 수학적 범위를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공간구성을 형성하고 확대·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 우리는 누구나 ‘상실의 시대’를 산다. 어떤 기억이나 정신, 자격이나 물질, 권력 등 인간의 삶에 관계한 것들은 상실된다. 물질의 사라짐이 아닌 정신의 망각도 마찬가지이다. 상실은 사전적 뜻처럼 어떤 것을 ‘잊거나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는 것’이다. 조윤국의 ‘상실 시리즈’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익숙한 것을 잃어버린 기억들이 작가에게는 상실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궁극에 조윤국의 작품은 개인의 삶에서 되풀이되는 ‘상실’의 근거를 입체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종이박스라는 보잘것없는 물질이 살아가는 공간, 존재의 가치를 묻는 메타포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골판지사용의 타당성과 효율성, 명제의 명확성, 작품표현의 다양성, 작품의 보존성 등 여러 형식적 측면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살아가는 공간 문제에 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내밀하게 작품으로 이어가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어온 과정들이 단순히 손재주에 느끼는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공간을 해체하고 해석하는 과정으로 사물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아가는 시도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쌓아가고 있는 부분에서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
삶의 철학은 혼돈의 시기를 거치며 그 존재 가치가 더 빛난다. 조윤국과 몇 차례 만남에서 현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일련의 혼돈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의 명료성을 찾기 위해 겪어야할 필연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의 작품에서 받은 일관된 인상은 상실, 방황, 고뇌, 삶의 진솔한 태도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보다 남다른 공간인지력이다. 이러한 장점은 새로운 문제 제기와 과감한 실험적 시도로 자기만의 예술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데 큰 장점이라고 본다. 이에 입체작품의 안과 밖, 형식과 의미를 내외적으로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법(예: 건축분야의 연구), 다양한 형식과 새로운 시도의 전시, 더하여 일련의 작업과정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정리해나가는 일까지 의미 있는 작품의 창출을 위한 일들을 하나씩 이뤄나가길 기대한다.
REANALYSIS OF LIVING SPACE
SEVERAL IMPRESSIONS OF JO YUN GUK’S WORK ‘THE LOSS’
2016
Byun, Jong Pil | Director of Chang Ucchin Museum of Art
1. The work takes after the artist. This is because there are various elements in the work such as the artist’s thought, personality and characteristics, not its appearance. Jo is precise and meticulous when I met him. Also, he is calm and straightforward. His meticulous and calm character is evident in his work which is integrated hard physical labour.
His work, which has consistently insisted on one method of production since 2013, has become more elaborated. Compared to works of the past, density of making and technical know-how seems to have increased. He enhanced robustness and preservation of work with reinforcing the vulnerability of preservation shown between 2014 and 2015, and added diversity and weight to the monotony of expression with repeated colouring and retouch. It is perhaps reasonable that the work of a hand-crafted artist will improve density and skill with the repetition of similar content and form. The accumulation of mastery is bound to play a role in improving the perfection of the work. The question is whether the content has grown as deep as its appearance.
Jo’s sculptures are fundamentally based on his individual preference –sneakers and daily supplies – and nostalgia like as the study of his father. As the range of experience in new area like staying in New York expands, his interest in the fundamentals of life has deepened and there is a change in his will and thought accordingly. His miniature work began with a series of sneakers that made in the concept of drawing when he could not do huge work in small space. Since then, as the target of reproduction has been expanded to things for everyday life, the corrugated paper work has become a way of expressing itself. In the process of embodying various objects into corrugated cardboard, he has been transformed to the series of ‘Study’ that have shifted his gaze from one object to the space, and to the series of ‘Column’ shaped buildings that conglomerate dozens of houses beyond one space. The work has extended to massive flat shape with numbers of houses spread out in the shape of island. So, expanding from one object - Nike’s sneakers - to personal room, buildings, locations and areas is the biggest change in his work. In particular, the transformation from three-dimensional structure to style of relief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 works of the past have been concentrated in an unfolded face. The sense of the subject that extended to the general problems of modern society including housing problems, the era of lost and so on with shifting the focus of his personal taste and space to the outside world is quite positive.
2. Home is a necessary space for comfort and safety, but it is not an immutable object. As Saint Exupery said, “Every house is threatened.”, houses are rapidly changing, developing and losing their presence of the past in modern society. In the wind of reconstruction and redevelopment, buildings of the past are forcibly demolished, and houses that have endured the years are worn out and gone. Eventually, it is difficult to guarantee the existence of living space of its own accord or not. As soon as someone dumps or sells things and the owner of house leaves the houses, they remain a completely different object from what it has been worth. It is in the same vein that he accumulated the feelings of loss left after the existence of object disappeared (or demolished) such as his felling after selling his cherished things and seeing the house in neighborhood being demolished. A secret of the study series is in the futility, anxiety and loss felt in a scene where the treasure house of knowledge remains in ruins rather than in the curiosity to look into the space created by hi obsession. The series of study which had been produced steadily since 2012 – A Study (2012), The Street Where Sell Books (2013), The Old Room (2014) -, was not produced for some time and reappeared in 2016 without a great transition of the external frame. But, the space in the work is deeper and dotted things are scattered like an unfinished story. It is like looking at the traces of his anguish and wanderings. Various objects scattered in the study seem to have forgotten stories, remaining stories and stories someone dreamed of. Even the anxiety and desire that he has faced to survive as an artist.
The reason for things that the study series still plays an important part in his work is read as another expression of anxiety which comes from uncertainty of the work that persistently bothering him, like an unfulfilled desire for knowledge. It also seems that they show the regret and affection for the things that he himself could not protect. Above all, it is impressive that the work of study in 2013~14 deepened the sense of expression and interpretation of space in the work in 2016. This is seen as a result of his focus on the completion of formative process and his clarity of connotation in expressing the space. His works are based on his very personal experience, but they are the result of his unique spatial perception skills which are perceived by intuition rather than by exhaustive calculation.
What is noteworthy in his work at this point is the series of ‘Relief’ mentioned earlier. This island-shaped work was created from the experience of staying briefly in an old building near Manhattan of New York in 2015. There is the biggest change in composition or visuality among his three-dimensional works so far. In fact, the previous series of columns had strong feeling of obsessive building about something and inexplicit filling like the process of assembling toys. In comparison, the relief series is new in the composition of building blocks stacked to the side. It feels like the thinking flexibility was added to the formative pleasure of that the buildings can be built naturally from side to side like this. Especially, it is impressive to change the limits shown in his work so far by grafting the spatial composition of Manhattan that buildings are so tightly adjoined together onto his work.
The series of study and column are stereoscopic embodiment of substantial objects based on his experience, whereas the relief series is closer to abstract space. While the former works were fixed within regular scope including the size of buildings, height of columns and the way of materialization, the latter can form a new style of spatial composition more freely and expand infinitely in the height of relief and the face of work with no fixed frame.
3. We all live in the era of loss. Everything related to human life – any memory, spirit, qualification, matter and power – is lost, the forgetting of consciousness ditto. ‘The Loss’ means forgotten, lost or taken away as stated in the dictionary. The series of loss is in the same vein. The memories of losing familiarity by frequent moving and transfer from his childhood left the word ‘loss’ to him.
His works show that the worthless material called paper box can act as a metaphor for asking the value of living space and existence through embodying the basis of loss repeated in one’s life. The tasks that should lead several problems in form, such as validity and efficiency of using corrugated paper, clearness of thesis, diversity of expression and preservability of work, and deep philosophical thoughts about living space problems to the artwork still remain. Nevertheless, his potential for development can be seen in the following. 1. The process has led to the process of dissolution and interpretation of the space where people live beyond staying at the joy of being dexterous. 2. His attempts to find meaning and existence value of things are gradually persuasive.
The philosophy of life shines more through the period of chaos. I told on Jo that a chain of chaos surrounding him is the inevitable process for finding clarity of work’s meaning and value in several meetings with him. Though the coherent impression from his work is his own unique ability of spatial cognition instead of abstractive and vague words like loss, wandering, anguish and honest attitude toward life. This strength plays a huge part in completing the long-term project ‘His Own Art’ with raising new issues and drastic experimental attempts. I look him forward to do tasks for creating significant works such as research on the method for strengthening the inside and outside - the form and the meaning – of works, new attempts at various forms of exhibition, careful recording and organizing of a series of work processes and so on.
골판지가 재현한 기억들
2014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큐레이터
상품이나 물건에는 항상 가치라는 게 따라붙는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소유하려고 할 때는 대부분 어떤 쓰임새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가리켜 사용가치 Use Value 라 한다. 쓰임새가 맘에 들어 그것을 소유하고자 할 때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 구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교환가치 Exchange Value 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쓰임새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폼이 날 것 같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진다. 즉 기호가치 Sign Value 의 위력이다. 이를테면 명품을 구입하는 것은 그 명품이 가지고 있는 기호가 특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우리가 아는 상품의 일반적인 가치들이다. 보통 이러한 가치들에 입각하여 상품이나 물건이 소유되고 유통되고 폐기된다. 그런데 이 범주를 넘어서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 대단히 소중한 가치인 걸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간과되는 영역인데, 선물과 같은 다소 개인적 사연과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물건의 가치. 즉 보존 가치 Preservation Value 다. 쓸 데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는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가치다.
조윤국의 작업은 바로 이런 보존가치에 대한 남다른 반응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골판지 작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신발시리즈 (2009)> 는 바로 이런 가치에 대한 눈뜸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가치의 전도가 이뤄지는 과정이 동반된다. 조윤국은 나이키 신발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나이키 신발의 기호 가치에 반했다고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개인 사정으로 이 애장품들을 다시 내다팔게 된다. 나이키 신발의 기호가치를 포기하고 교환가치로 환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애써 모았던 애장품의 상실은 그것의 보존가치를 상기시키게 되었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남아 있던 신발 상자로 잃어버린 신발들의 보존가치를 복원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시작된 골판지 작업은 낮은 가치의 물건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 또는 추억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Work Room (2010-2011)> 은 이런 방향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이다. 미완의 작품이 있어 사람들이 오면 멋쩍은 미소를 머금게 되지만 더불어 지인들의 방문은 매번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 작업실의 물건들을 골판지를 이용해 하나씩 재현한다. 재현된 작품들은 조윤국 작가의 작업실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든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안타깝게도 작업실 자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Work Room에 있는 물건들이 드러날 뿐이지 Work Room 자체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주변의 물건을 골판지로 재현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한계가 아닌가 싶다. 손재주가 좋다는 건 이런 뜻밖의 문제를 드러낸다. 재현 대상에 내재한 어떤 의미를 찾고 싶더라도 만드는 과정에서 재현 자체에 집중해 버린다.
작가 스스로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했던 것 같다. 그는 2012년에서 2014년까지 골판지 상자 안에 책이 가득한 높은 책장과 공구들이 널브러진 작업실 풍경이 담긴 <공간을 만들다> 시리즈를 제작한다. 공장의 한 구석으로 보이는 곳도 있고 2층이 트인 대형 거실의 모습도 보이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책과 책장이다. 가지런히 꽂힌 거대한 책장과 진열대에 상품처럼 놓인 책들도 보인다. 그는 허름한 폐 공장에 잔뜩 버려진 책들과 종이박스 위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책을 찾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우연히 접하게 되는데, 그 때 문득 어릴 적 집에 있던 아버지의 높은 책장이 떠올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에서 오는 중압감은 책읽기를 꺼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충격에 의한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은 항상 사후적인데 그에게는 바로 이 사진 한 장에 의해 책에 짓눌려 있던 자신의 모습을 환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귀환한 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폐허가 된 공간에 흔하디흔한 골판지로 책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이 책들은 이미지만 구현되었을 뿐 그 책의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해서 이 시리즈에서는 어떤 대상의 올곧은 재현에 매몰되지 않고 이미지로 소환된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된다. 배경이 되는 골판지 상자는 뜯겨 나간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폐허의 공간을 적절히 구성하고 있으며 그 곳에 등장하는 미니어처들은 공간 자체를 더욱 부각시키는 하나의 소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실 작가는 여기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어쩌면 공간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간을 만들다>, <오래된 방>, <세 사람> 등은 모두 공간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 건물과 장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2014년 올해 조윤국 작가는 내부 공간이나 물건에 집중하던 시선을 바깥으로 확장한다. 이는 스스로에게도 특별한 경험인 듯하다. 간판이 가득한 건물들로 구성된 <작가의 외출 (2014)> 은 그의 일상적 작업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보존가치에 대한 반응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작업 대상의 변화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부분이다. 사용가치가 떨어지고 교환가치도 하락하는 재개발 지역의 건물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삭제되어야 마땅한 것들이다. 그 곳 삶의 흔적과 기억, (과장되게 말하자면) 문화의 보존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특별히 그가 재개발의 논리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비판의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이나 공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는 대상들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일정정도 기존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내포하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을 채집하는 것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신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몸부림과 다를바가 없다. 춘천 역시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그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서울과의 시간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투기 자본이 급속히 침투한 흔적도 역력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살아가는 동네가 삭제되는 것은 자신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추억, 즉 기억이라는 것은 사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장치이기에 기억의 상실은 나라는 존재의 상실과도 직결된다. 주변의 존재가 사라질 때 느끼는 상실감은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한다.
사실 도시 개발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대단히 많다. 거대하게 성장한 초고층 빌딩 숲, 고급 카페와 쇼핑몰, 잘 정돈된 공원, 수많은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화려한 도시야경 그리고 그곳을 배회하는 멋스러운 구경꾼 등등. 많은 작가들이 이런 도시의 표피적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이러한 이미지 생산에 따른 부정의 결과물, 예컨대 대규모 재건축에 의해 폐허가 된 마을, 공허한 도시 공간, 이합집산에 의한 분열적 도시, 분열적 도시를 부유하는 행위자들을 폭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들이 비판 대상인 스펙타클한 도시를 시각화하고 있어 작품들 역시 스펙터클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조윤국 작가의 동네 풍경은 재개발 직전의 소박한 동네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이러한 경향에서 한 발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업 역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손기술에 근거한 잘 만든 미니어쳐 세계. 앞서 말했듯 그가 가진 손재주는 재현된 미니어처의 형태에 감탄하는 방향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럴 경우 그가 보존하고픈 자신의 기억은 쉽게 증발해버린다. 잘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조윤국 작가가 삭제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반가운 일이다. 그가 원하듯 삭제될 것들의 이미지가 아닌 그것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데 천착한다면, 우리는 그를 통해 스스로 삭제했던 선물을 되찾는 행운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THE MEMORIES REPRODUCED BY THE CORRUGATED PAPER
2014
Kim, Jae Hwan | Curator of The Gyeong-nam Art Centre
The street where sell The value is always followed to products and things. When we want to own something, most of it has necessity or use. This is referred to as the ‘Use value.’ If the price is too high when we want to get it, we have no choice but to give up the purchase. Because the ‘Exchange value’ is so high. However, we sometimes want to buy something that makes us look good though it is more expensive than its use. It is the power of the ‘Sign value.’ For instance, purchasing luxury goods is because its value has special symbolism. These are the general values about products we have known. Goods are usually owned, distributed and disposed according to these value criterions. By the way, there is an another value beyond this category. It is an area of great value but easily overlooked in everyday life, and a thing with rather private stories and memories such as a present. This is the ‘Preservation value.’ It is not that useful and appreciate to anyone, but precious only to me. This is not compatible with the nature of capitalistic society, but still exists.
The work of Jo, Yun Guk began with the unique response to this preservation value. , which is the first of corrugated paper work, can be understood as a beginning stop for this value. Of course, there was a process of value transfer. Jo had got a hobby of collecting Nike’s sneakers, and this can be said to be caught by the sign value of Nike’s sneakers. But, he soon had to resell his cherished things for personal reasons, it means he gave up the sign value of Nikes and reverted to the exchange value. However, the loss of the hard-earned collections reminded him of its preservation value, it made him to restore the preservation value of sneakers he had lost with the remained boxes of shoes. The work started like that moved toward the way of attaching new value on objects or memories that someone values through the low-value things.
This switching direction had been initiated by “The Work Room (2010-11)” in earnest. To the artist, the studio is very private and official place at the same time. Some incomplete works in the studio make Jo to be embarrassed whenever people visit to his studio, but their visit is always nice to him. He had reproduced the objects in his studio by ones using the corrugated paper. These reproduced works make us to imagine what objects were in his studio, but that is all. Unfortunately, it is not enough to make sense of the studio itself. Since the objects in the ‘Work Room’ are only revealed, but we are not able to see the ‘Work Room’ itself. That may be the limit to be revealed because ha was focusing on the skill of reproducing. Being dexterous cause these unexpected problems. Even if he wants to find the inherent meaning of the reproduced objects, he cannot help focusing on the reproduction itself.
Jo seems to be aware of this problem himself. He had made the series of “Make A Room”, which is a workroom scene with bookshelves and tools in a bow, from 2012 to 2014. It seems like the corner of a factory and the living room with opened second floor, but the most notable are definitely books and bookshelves. He lit on the pictures that people roamed over on piles of discarded books and boxes for collecting books in an abandoned factory, then he suddenly remembered his father’s huge bookshelves in his childhood and the pressure that he felt at that time. Coming the impactive internal injury up to the surface is always ex post facto, he was reminded of himself being weighed down by the books through this one picture. This unusual interest in the book made him reproduce books in a ruined space by corrugated cardboard. These books, of course, were only materialised the images, but do not contain the contents of them. So, he was able to tell the stories of objects recalled as images, not buried in the direct reproduction of an object in this series. The corrugated paper box as the background realised the ruined space properly on account of retaining the ripped traces, and the tiny things that placed in it performed a role as a prop for highlighting the space itself. He may be wanted to talk about books, but the truth is he has shown an interest in the space itself as the title of his works – Make A Room, The Old Space, and The Three men.
The interest in space of Jo drew attention to the buildings and places. In 2014, he had begun to expand outwards his focus on interior space or objects. This seems to be a special experience for himself. “Artist’s Outgoing (2014)” had departed from his ordinary works. However, if the response to the preservation value considered, this change to the object of work is fully understandable. Buildings in redevelopment area without the use value and the exchange value should be removed in the capitalistic world. The traces and memories of life in there, and the preservation of the culture are not a consideration at all. It is not sure whether he has a critical consciousness of the capitalistic society that forces the logic of redevelopment. But it is clear that the objects and spaces he values personally are not particularly notable in the capitalistic world.
In fact, there are a lot of artists dealing with this urban development. The vast forest of skyscrapers, fancy cafes and shopping centres, well-organised parks, the city lights decorated with numerous lights and neon signs, nice people wandering around here, and so on. Many artists are creating works on capturing these superficial mages of the city and exposing the negative consequences of the image production such as towns and empty city spaces devastated by massive redevelopment, cities divided by meeting and parting, and agents who drift this divided cities. The special point is that their works also tend to be spectacular because the artworks – the result of this work – are visualizing the spectacular city that is the subject of criticism.
As Jo’s neighborhood scenery retains an ordinary neighborhood just prior to redevelopment, his works of neighborhood are a step away from those trends. Although his works are providing another attraction. This is a well-made little world based on his hand skills. But his dexterity runs the risk of slipping into admiring the reproduced miniature form as mentioned earlier. If that happens, the memory he wants to preserve will easily evaporate. It is therefore quite difficult to well-making. Nevertheless, his interest in being vanished is still glad. If he focuses on preserving the memory of what will be disappeared not on the images of them as he wants, we will have the good fortune to regain the gift that we had deleted ourselves through him.
EXTRA, 그 형태 변환에서 읽혀지는 예술적 문맥에 대하여
2011
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장
작가 조윤국의 이번 전시는 'For the Extra'라는 명제의 전시 주제처럼 주연배우가 아닌 ‘Extra’, 즉 배역 없는 배우와 같은 영역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작가는 종이박스와 같은 신발 포장재를 이용하여 신발을 만든다. 이 종이박스라는 포장재는 신발과 동일하게 유명브랜드의 상표가 그려져 있는 신발 박스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유명 브랜드의 신발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종이박스라는 물질의 속성은 그저 신발을 보호하기 위한 포장 재료일 뿐이다. 작가는 상당히 정교하게 형태와 상표까지 유사하게 신발을 만들어내기에 언뜻 보아서는 명품 브랜드의 신발로 착각할 정도이다. 아니 신발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니 종이 박스로 된 신발이라 명명해도 좋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종이박스 신발은 유명 브랜드의 신발과 같은 형태와 같은 상표가 붙어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 유명 브랜드 신발은 아니다. 외형의 유사함이 본질 자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과정의 특징은 포장재가 보호하고 장식해 주었던 물체, 즉 신발과 같이 그 포장재 속에 담긴 물체의 위치와 형태로 탈바꿈시키는 일종의 컨텍스트 변환과 같은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이박스의 질감과 속성은 변하지 않았으나 형태와 놓여 진 위치의 상황적 조건이 달라진 종이박스는 더 이상 종이박스라고만 불리 울 수 없다. 즉 신발의 위치와 형태의 조건을 취득한 종이박스는 이제 종이라는 재료의 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신발이라 불리 울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Extra’를 ‘Main'으로 바꾸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종이박스에 투영된 ‘Extra’라는 것은 이 시대 인간 세계의 삶의 양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그러한 개념이었다. 극소수의 ‘Main'과 대다수의 ‘Extra’의 위치와 형태를 교체해버리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는 이 작업과정에서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하고 어느 정도 실패한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원본의 형상과 컨텍스트를 획득한 종이박스로 만들어진 신발이라는 복사본의 상황은 유명브랜드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었고 동시에 일종의 신발이라는 명칭을 획득하였을는지 모르나 유명 브랜드 실제 신발과는 질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명 브랜드의 신발이 되고자 한 종이박스는 지속적으로 그 유명 브랜드의 신발의 형상만을 지시하고 있을 뿐 그 형태가 지시하는 바로 그 신발 자체는 되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고,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점만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사회에 대한 따듯한 시선에서 잉태한 ‘Extra’에 대한 로망은 기표적 한계처럼 그 본래의 의미에서 계속 미끄러지게 되는 시각적 경험만을 보는 이에게 던져주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인간 사회에서는 ‘Extra’가 ‘Main'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도 ‘Extra’가 ‘Main'의 외부 조건만을 닮게 된다고 해서 ‘Main'이 될 수 없듯이 진정한 ‘Main'이 된다는 것은 질적 변화를 수반해야 되지 않는가에 대해 본질적 의문을 갖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처럼 형태 모방을 통한 원본으로의 질적 변화와 관련한 시도는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음을 이 작업과정에서 확인하게 되지만, 이와 별도로 조윤국 작가의 작업은 어떤 일정한 물질에 대한 예술적 맥락으로의 질적 변환, 즉 종이박스 포장재에 형상적 구조를 변경하고 놓여 진 위치의 공간구조를 바꾸는 컨텍스트 변화 과정에서의 문맥 변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명 브랜드 신발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공산품으로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술작품으로서의 예술적,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가 의도한 진정한 'Main'으로의 탈바꿈은 외적 형태의 모방과 관련한 원본을 향한 변화보다는 이처럼 예술적 맥락으로의 질적인 변화에 있음을 오히려 그의 종이박스 작업이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 조윤국의 작업은 종이박스와 같은 포장재에 형태적 모방만으로는 ’Extra‘에서 물체의 원본이 갖는 ’Main'으로서의 아우라를 발생 시키는 데에는 실패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이박스가 예술품이라는 새로운 맥락으로 탄생한 지점에서는 ‘Main'으로서의 아우라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작가가 의도한 ’Extra‘의 욕망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 조윤국의 작업은 종이박스와 그 종이박스로 만들어낸 형상 그리고 예술작품으로서의 문맥 변경을 이뤄낸 종이박스라는 세 가지의 영역 사이에서 무엇을 원본으로 보고 무엇을 복사본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예술품으로서의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등과 같은 본질적 질문을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 읽혀지며, 예술작업에 있어서 질적 속성이 다른 재료에 의해 모방되고 묘사된 작업과 여기서 만들어진 작품에 대하여 형태적 유사함과 재료적 속성의 다름이라는 차이가 발생시키는 일정한 간극 사이에서 예술로서의 위치와 그 예술적 의미 발생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보고 가늠해보는 하나의 계기를 던져주고 있다.